화성시 시티투어 착한여행 하루

문화의 숨결

당성 전경1

당성 전경2

당성 전경3

용주사 전경1

용주사 전경2

용주사 전경3

융건릉 전경1

융건릉 전경2

융건릉 전경3

융건릉 전경4

당성 전경1

당성 전경2

당성 전경3

용주사 전경1

용주사 전경2

용주사 전경3

융건릉 전경1

융건릉 전경2

융건릉 전경3

융건릉 전경4

화성 융릉과 건릉(사적 제206호)

융릉과 건릉은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융릉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혜경궁홍씨)의 무덤, 건릉은 정조(조선22대 왕)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정조 즉위 후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라 봉하고,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이라 칭하였으며,
그 후 고종이 즉위하면서 1899년 사도세자는 장조, 혜경궁홍씨는 헌경황후로 추존되어 융릉으로 명명되었다.
대개의 왕릉에서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축을 이루는 반면 융릉은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는 특징이 있다.

건릉은 원래 현륭원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 사망 후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옮기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용주사

용주사는 정조 14년(1790년)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고 묘소를 수호하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세운 절이다.
이곳은 통일신라 때 세워 고려시대 때 소실된 갈양사의 옛터라고 전한다.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용주사는 창건 과정과 그 이후에 정조가 하사한 유물들을 사찰 내 효행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화성 당성(사적 제217호)

당성은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하며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기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이다.
삼국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처음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 때는 당성군이라 하였고 신라 점령시에는 당항성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 중국과의 해상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 되었던 곳이다.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내륙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해외로 뻗어가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문화적, 군사적 주요한 거점으로
통일신라 이후 당성의 규모가 확대되었고 고려·조선시대까지도 해양방어에 중요 거점으로 유지되었다.